온라인 커뮤니티가 만드는 ‘가짜 공감’: 디지털 공간의 군중심리

누군가의 고민 글에 수백 개의 ‘좋아요’와 댓글이 달리고, 하루아침에 무명의 개인이 ‘영웅’으로 칭송받습니다. 또 어떤 날엔 같은 인물이 조롱과 비난 속에 SNS를 떠나야 하기도 하죠.
이처럼 온라인 커뮤니티는 우리에게 ‘공감’이라는 이름의 연대를 제공하지만, 그 속을 들여다보면 진짜 공감인지, 아니면 군중의 감정에 휩쓸린 일시적 반응인지 헷갈릴 때가 많습니다.
디지털 공간에서 우리는 ‘연결’되어 있으면서도 실제로는 가장 고립된 상태일 수 있습니다. 이번 글에서는 온라인 커뮤니티가 형성하는 가짜 공감의 구조, 그것이 왜 문제인지, 그리고 이를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지를 함께 살펴보겠습니다.
1. 알고리즘이 설계한 감정: 공감조차 ‘유도’된다
오늘날 대부분의 온라인 커뮤니티는 단순한 소통의 공간이 아닙니다. 사용자의 반응을 분석해 더 강한 감정, 더 자극적인 콘텐츠를 보여주는 알고리즘 구조 속에 있습니다.
이 구조는 우리가 무엇에 공감하고, 무엇을 싫어할지까지 예측하고 조종합니다.
- 눈물 어린 사연, 억울한 피해자, 선한 의인 등의 이야기가 확산되는 이유는, 사람들의 감정선을 자극해 더 많은 ‘좋아요’와 ‘공유’를 끌어낼 수 있기 때문입니다.
- 이런 구조 속에서 우리는 ‘진짜 공감’보다는, 반응할 수밖에 없도록 만들어진 이야기들에 휩쓸리는 경우가 많습니다.
문제는 여기서 발생합니다.
우리가 보고 있는 사연이 사실인지, 누군가의 입장에서 조작된 건 아닌지 확인할 시간도 없이, 단 몇 초 만에 ‘좋아요’를 누르고, 댓글을 달고, 분노를 공유합니다.
그리고 그다음 날, 새로운 사연이 나타나면 우리는 곧바로 잊어버립니다. 공감은 지속되지 않고, 소비되고 사라지는 감정이 됩니다.
즉, 디지털 커뮤니티에서는 ‘공감’조차 알고리즘에 최적화된 콘텐츠가 되어버립니다. 우리는 누군가에게 위로를 건넸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내 감정을 소비하는 데 집중한 것일 수도 있습니다.
2. 군중심리와 정체성의 분산: 우리는 누구에게 공감하는가?
온라인 공간에서는 익명성과 집단성이 결합되어, 사용자가 자신의 정체성을 분산시킨 채 행동하게 됩니다. 이때 공감은 개인의 감정이 아니라 군중의 정서로 변질됩니다.
특정 커뮤니티에서 유행하는 감정 흐름이 있다면, 사용자는 그 흐름에 맞춰 자신도 비슷한 감정 표현을 해야 소속감을 느낍니다.
예를 들어,
- 디지털 추모 물결
- 특정 사건에 대한 집단 분노
- ‘악플’로 이어지는 인터넷 재판
이러한 감정들은 실제 공감이라기보다는, ‘공감하는 척’하는 방식의 집단 동조로 볼 수 있습니다. 공감을 하지 않거나 다른 의견을 내면 “분위기 파악 못한다”, “감정 없다”는 비난을 받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더 나아가, 커뮤니티는 자주 ‘우리 vs 그들’ 구도로 나뉘며, 한 사람의 고통은 집단의 무기가 되기도 합니다. 피해자는 동정의 대상이지만, 가해자는 검증되지 않은 정보만으로도 집단의 적이 되어버립니다.
이런 구조에서는 피해자의 고통마저 콘텐츠화되고, 이용의 대상이 되기 쉽습니다. 공감은 연대가 아니라 배틀의 명분으로 활용되고, 진실 여부는 사라진 채 ‘감정 전시’가 우선시됩니다.
3. ‘가짜 공감’의 부작용: 진짜 고통은 외면당한다
디지털 커뮤니티에서의 가짜 공감은 단순히 피상적이라는 데 그치지 않습니다. 오히려 실제 도움이 필요한 사람을 외면하고, 자극적인 콘텐츠에만 관심을 갖게 만드는 구조적 부작용을 낳습니다.
예를 들어, 실제로 도움이 절실한 누군가가 조용히 도움을 요청하면, 관심을 받지 못합니다.
반면에 극적인 드라마처럼 편집된 이야기, 선명한 피해자와 가해자가 있는 사건, 분노를 유발할 수 있는 요소가 있는 콘텐츠는 수십만 회의 조회수를 기록합니다.
이는 우리가 공감을 ‘감정의 표현’으로만 생각하고, 책임이나 후속 행동은 중요하게 여기지 않기 때문입니다. 누군가의 글에 “힘내세요”라고 댓글을 달고 나면 우리는 이미 도와준 것 같은 착각에 빠집니다.
하지만 그 이후, 실제로 그 사람의 삶은 바뀌지 않았고, 아무도 곁에 남아있지 않은 경우가 많습니다.
이런 식의 공감은 ‘가짜 공감’이 될 뿐 아니라, 진짜 공감 능력을 무디게 만들기도 합니다. 수많은 사연, 수많은 분노, 수많은 감정에 노출되다 보면, 결국 어떤 이야기를 들어도 “또 하나의 콘텐츠”로 느끼게 되는 냉소적인 태도가 생겨납니다.
결국 우리가 읽고 있는 건 누군가의 고통이 아니라, 잘 편집된 감정의 상품이 되는 셈입니다.
맺으며: 느끼는 것으로 끝나지 않는 공감의 회복
공감은 인간의 본능이자 공동체의 기초입니다. 하지만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공감이 알고리즘에 휘둘리고, 군중심리에 휩쓸리고, 자극적 콘텐츠에 소비되는 현상이 반복되면, 우리는 점점 더 진짜 사람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지 않게 됩니다.
이제 우리는 질문을 바꿔야 합니다.
“공감했는가?”가 아니라, “무엇을 했는가?”로.
단순한 댓글 하나로 마음을 대신하는 시대에서 벗어나, 진짜 공감은 책임과 실천을 동반한다는 사실을 다시 기억해야 합니다.
공감은 누군가의 말에 ‘좋아요’를 누르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이 말할 수 있게 기다려주고, 함께 머무르고, 때로는 아무 말 없이 옆에 있어주는 것일 수 있습니다.
디지털 시대의 공감은 속도가 아닌 깊이로, 양이 아닌 지속성으로 회복되어야 합니다.
당신은 오늘, 누구에게 ‘가짜 공감’을 했나요? 그리고, 누군가의 진짜 목소리를 들어본 적 있나요?